안녕하세요, 예진이라고 합니다.
시를 사랑하려는 정민을 아끼는 사람들이 모여 나름대로 모아온 시들을 나누는 글을 써보자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들떴습니다. 오래 혼자 시를 읽어오면서 느끼던 외로움과 충만함은 늘 여전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마음을 많이 주었던 시들. 가라앉을 때, 부풀 때. 베란다에 나무 의자를 끌고 나가 해바라기를 할 때, 우레 같은 비가 내리던 날 창문 샤시에 얼굴을 기댈 때. 매순간 곁에 앉고 눕고 때로는 나를 내려다보기도 올려다보기도 하던 시들을 함께 읽을 수 있는 존재들이 생긴다는 것이 참 기뻤습니다. 시는 너무도 오롯한 예술이기에 독대하는 것이 가장 시답지만, 때로는 시 주위에 팔짱 끼고 둘러 앉을 때 더 많은 마음이 쌓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함께 오붓이 둘러앉을 수 있어 반갑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기숙사에 있느라 새 시를 고를 새가 없었습니다. 기숙사 선반에 꽂아둔 다섯 권 남짓의 시집들을 뒤적이며 시를 골랐습니다. 새롭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언제나 새롭습니다. 매년 찾아오지만 매번 다른 초봄의 바람 같습니다. 저 역시도 이렇게 시 앞에서 한 발짝 더 겸손해집니다. 그렇게 제가 고른 시는, 허연 시인의 <상수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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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에 잠겼다 당신
밥솥에 김이 피어오를 때
이대로 죽어도 좋았던
그 시절은 왜 이름조차 없는지
당신이 울지 않아서 더 아팠다
꽃 이름 나무 이름
가득 쓰여 있던 당신의 노트도 늙어갔고
낙서가 경전처럼 빼곡했던
발전소 담벼락과
취기에도 자주 잠이 깨던
강변을 떠나며
아득함에 대해 생각했다
당신
말더듬이 같이 달밤을 두고 갔다 멀리
자취방 옆 키 큰 꽃나무에
밤은 또 쌓였고
잘못 걸려온 전화가
문득 비가 그쳤음을 알려준다
이제 저 강물 속에서
당신을 구별해낼 수 없다>
_허연, 「상수동」(『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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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지금은 떠나버린 누군가와의 자그만 날들을 나열합니다. 날과 시간은 결코 멈춰 서 있는 법이 없고 저마다의 표정으로 흘러가고야 말지요. 삶은 순간들의 연쇄로 이루어집니다. 그 연쇄 속에는 노트의 늙어감도, 발전소의 담벼락도, 강변도, 달밤도, 꽃나무도 있습니다. 시간 속에서 아름답던 것들과 영원할 것만 같던 것들은 참 쉽게 삭고, 성긴 것들은 금세 와해됩니다. <이터널 선샤인> 속의 두 인물처럼 죽어도 좋을 것 같던 시절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지나간 날들은 보편적이기에 오히려 다정한 단어들을 붙일 만큼 아릿합니다. 그렇지만 삶에는 멈춤 버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시절 속에 묻히고 그런 시간의 흐름으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조차 구별해내지 못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저는 이 시가 죽었거나 사라진 사랑스러운 타인에 대한 독백인 동시에, 지난 시간 속에 멈춘 스스로를 향한 고백으로 읽혔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한 소중한 타인의 상실을 경험한 적이 없는 저는 후자의 독해에 마음이 실립니다. 지나간 순간의 저, 그래서 더는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된 저 자신에 대해 한참을 동그마니 생각하게 된 시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죽어도 좋을만큼 행복할 때 발견했던 삶의 이유를 잊습니다. 그렇게 저는 지난 날의 고유한 저를 조금씩 잡아먹으며 지금의 제가 되고야 맙니다. 이럴 때 우리는 기억하기 버튼을 발동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시를 읽으며 지난 날의 나를 한 번만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년 전 비오던 봄날 정오, 목련 나무 밑에서 사진을 찍던 저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다고요. 시는 구별해낼 수 없다,고 하며 끝이 나지만 저는 이상하게도 시가 저를 알아볼 도구들을 알려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날에 빼곡하게 적어왔던 늙은 일기장, 벽돌 담벼락, 신발주머니를 돌리며 걷던 천변, 달의 모양들을 외우던 밤, 아파트 맞은편 공원의 내 키만하던 꽃나무, 서툰 맞춤법으로 적은 문자. 그런 것들을 떠올리고 새로 일기장 위에 나열해두면 이제 저 강물 속에서 저를 구별해낼 수 있습니다.
살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살아갈 용기를 주는 것은, 죽어도 좋다던 순간의 저입니다. 누구에게나 이토록 고강도의 행복감이 뒷목을 치고 지나갔던 순간이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일상이 아니더라도요. 그러니까 적어도 펜타포트 스탠딩 석에서라도.
오늘과 내일의 진배없음에 지친다면 매일이 호기심이었던, 그래서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생동의 증거였던 순간을 복기해보신다면 좋겠습니다. 그 생동 속에는 고요함도 살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이 시가 있습니다. 저는 그 덕에 시를 읽으며 간만에 뒷목에 머무르는 행복을 느꼈습니다. 여러분의 어깨에도 내려 앉을 행복이기를 진심으로 바라 봅니다.
제 이야기가 너무 많았던 것 같아 마음이 쓰입니다. 다만, 김보라 감독이 <벌새> 시나리오집 앞에 썼던 글을 생각하겠습니다. 가장 깊은 나의 이야기가 원형의 이야기가 된다는 말 말입니다. 처음인데도 이상하게 고백이 많았습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도 잘 읽고 잘 듣고 싶습니다.
날이 참 변덕스럽습니다. 햇살이 따뜻하다가도 금세 찬공기가 밀려옵니다. 더 깊어질 봄을 기대하면서 모두 꽃샘추위에 지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읽어서 행복합니다!
추신,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를 시와 함께 들으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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