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구 초를 그리워하는 마음
여름이 지나가고 겨울이 불쑥 다가와 겨울 옷을 정리해야할 시기입니다.
어째서 가을은 더욱 더 짧아져만가는지 여름을 보내줄 준비를 할 시간도 짧아지는 기분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시는
아직 여름을 보내주지 못한 분들과 함께 여름을 보내주는 마음으로 읽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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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았다
‘아주 짧은 동안'
소리 내서 발음하자
두 번은 없다고 누군가 말해주었다
소리 내서 발음하자
한 번뿐이라고 누군가 대답해주었다
그것은 일 분 뒤면 사라질 것같이 굴다가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았다
땅에서 올라온 새싹 한 줄기
네 이름이 뭐였더라?
나는 순간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영영 잊어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기다란 나무가 마당에 서있는 걸 보곤
놀라서 웃고 말았다
오늘 아침, 이곳에는
한여름인데 겨울바람이 분다
바람에 실려 온 냄새가 기억나서
무심코 너의 이름을 부른다
너는 응? 하고 대답하는 대신
노트를 펼쳐주었다
나는 순간으로 시작되는 문장의 편지를 쓰다가
깨끗이 지우고 드라이플라워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어제보다 더
좋은 향기가 난다고 적었다
민구 , 「일 분이 되기 전 영원한 오십구 초」 (『당신이 오려면 여름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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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릴 때부터 지나간 순간은 절대로 어떠한 방법을 써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울하게 느껴졌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전 문장을 썼던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을 테니까요.
일 분이 된 지금을 오십구 초로 되돌리는 건 이재용만큼 돈을 가지고 있어도 대통령 할아버지가 와도 불가능한 일이니 오히려 공평한 일인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지나간 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순간도 올해 여름 가족들과 거실에 앉아 수박을 나눠 먹었던 날도 두 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이겠죠. 그렇기에 계절의 흐름은 늘 아쉽기만 합니다. 지나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올해의 계절을 그 계절에 품었던 마음들을 언제쯤이면 날씨의 변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놓아줄 수 있게 될까요?
저는 과거를 그리워하다가 현재를 즐기지 못했던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여름에는 겨울을 그리워하고 겨울에는 여름을 그리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흐름이 무서워 정작 지금도 내 인생의 중요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어째서 모든 것은 흘러가는지 지금 내가 앉아 있는 방도 시간이 흐르면 내 방이 아니게 되겠지 같은 생각에 우울해했습니다. 그래서 어릴때도 제일 속상하고 무서운것이 정든 집을 떠나보내야 하는 이사였습니다. 내가 잡고 있을 수 없는 흐름에 무언가를 놓아주어야하는 손은 언제나 무겁기만 합니다.
그러나 순간의 흐름이 있기에 영원을 믿습니다.
더 이상 흘러가지 않기에 순간은 다시는 찾아오지 않지만, 영원한 것이겠죠.
헤어졌기에 영원할 수 있는 관계가 있듯이 흘러갔기에 영원할 수 있는 마음도 있다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붙잡고 싶은 마음들은 책 사이에 꽃을 끼워 넣어 말리는 마음으로 간직해봅시다. 시간이 지나면 어제보다 더 좋은 향기가 날 말린 꽃을 끼워놓고 잊을만 할 때 그 마음을 꺼내 맡아보시길 바랍니다. 곧 다가올 겨울을 위해 옷을 꺼내며 옷장 안에서 1년 내내 겨울이 오길 기다리던 주머니 속 행운들을(오만 원 지폐 같은…) 발견하시길 바라며 그 물건들로 지나간 겨울을 추억해 볼 수 있는 가을이 되시길 바랍니다.
추신.
감기조심하세요! 건강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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