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를 이곳에 올릴까 고민하다가, 가장 최근에 읽었던 시집을 꺼내봤습니다.
이름이 독특해서인지 자꾸 손이 가는 시집이었습니다. 바로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 며칠은 먹었다'라는 책인데요.
처음 이 제목을 보자마자, 학생 신분인 저로서는 각종 시험문제와 선지들이 자연스레 떠오르더군요.
하지만 여기는 시험지가 아니니까, 제 마음대로 해석하며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항상 중요한 상징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찜찜했지만, 이번엔 그런 부담 없이 '내 마음대로 해석할 거야!' 라고 생각하며 읽으니, 나름 시를 즐겨보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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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觀音)
청파동 3
나는 걸어가기엔 멀고
무얼 타기엔 애매한 길을
누구보다 많이 갖고 있다
청파동의 밤길은 혼자 밝았다가
혼자 어두워지는 너의 얼굴이다
일제 코끼리 전기밥솥으로 밥을 해먹는 반지하 집,
블라우스를 털어넣고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시키고
TV의 음량 버튼을 나무젓가락으로 꾹꾹 누르고
무를 집어먹고 엄마 체르니 삼십 번부터는 회비가 오른대
고장 난 흰건반 대신 반음 올려 검은건반을 치며
목이 하얀 네가 말했습니다
그 방 창문 옆에서 음지식물처럼 숨죽이고 있던
내 걸음을 길과 나의 접(椄) 같은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덕분에 너의 음악을 받아 적은
내 일기들은 작은 창의 불빛으로도 잘 자랐지만
사실 그때부터 나의 사랑은 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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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으면서 도입부에서 특별히 많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나는 걸어가기엔 멀고 무얼 타기엔 애매한 길을 누구보다 많이 갖고 있다'라는 문장은 제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저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은 평범한 집안에서 남들이 다 겪어본 고통과 시련을 지나, 잘나지도 못하도 않지도 않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배경이 배가 불러 터진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적당한 삶이 가장 잔혹한 삶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잊곤 하지만, 중간에 위치한다는 것이 참으로 힘든 자리 아닌가 싶습니다.
도입부에서 공감이 가니 큰 어려움 없이 다음 문장들로 쉽게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래의 문장들을 보면 화자가 누군가를 관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목이 하얀 네'가 하는 행동을 일일이 바라보며 소소한 일상 속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직접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목이 하얀 네'가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면 화자는 왜 그런 그를 관음의 형태로만 바라볼 수 있었을까요? 관음을 하면서 화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한 시를 이렇게 깊이 탐구해본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시를 읽다 보면 화자의 감정을 생각하게 되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점이 많은 사람들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은 시를 읽고 나서도 의문형으로 끝나지만, 언젠가는 저도 답을 찾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런 어시사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시를 잘 모르는데다, 태생적으로 용기라는 것을 지니지 않은 채 태어난 제가 이런 곳에 글을 제출할 수 있었던 것은 어니스트 분들의 격려 덕분입니다.
시를 모르는 사람도 참여할 수 있다는 말에 저와 같은 사람들이 쓴 글이 하나쯤은 포함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닥 유익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제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이 있다면, 다음에도 뵙겠습니다.
유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