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잘 지내니? 오랫동안 이렇게 묻고 싶었어.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니? 뭐든 더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가.
안녕하세요. 팔층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어쩌면 마지막 우시사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처음과 마지막에만 참여하게 되다니… 수미상관이 딱 맞지 않나요? 농담입니다. 계속되면 좋겠어요. 무엇이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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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에 가고 싶다
한여름에 그렇게 말하니까 쪄 죽을 것 같은
더위가 입속까지 말려 들어오는구나 열대야
열대야니까
노상에서 과자 한 봉지 펼쳐놓고 캔맥주를 마신다
너는 어떤 연습을 하고 있어?
밤공기 누그러뜨리기 초식동물처럼
목이 길어질 것 같다
회사를 다녀볼까?
깨진 플라스틱 테이블 위로 오가는 질문과
생각과 생각과 생각들
매년 연장되는 여름처럼
우리의 딴청은 길어지고 있어
여러 매체에서 묘사되는 젊은 날은 대개 비현실적으로 빛나고 아름다우며 엉망진창인 것입니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속삭임 찢어발기고 싶은 종이들 매미 울음소리 너무너무
맹렬한 건 뭐든 무섭지 않아? 그게 호의고 선의고
다정일지라도
분위기를 파악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위기를
장악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 사람이 싫고 기대가 되지 폭우가 쏟아지길 기다리는 우산처럼
내진 설계로 지어진 건물처럼
볼륨 좀 높여봐
그래, 나도 이 음악을 좋아해
너는 표정을 구기며 웃는다 어디선가 희미한 불냄새가 풍겨온다 건너편 옥상에서 흰 연기가 솟아오르다 흩어진다
맛있는 냄새야 착각인가?
나는 맨발로 아스팔트를 밟아 해변까지 걷고 싶은데
왜 여기에 죽치고 앉아 있는 걸까 이러다
슬리퍼가 녹아 발이 땅에 눌어붙겠구나
이 동네는 바퀴벌레가 많고
서울의 다른 곳들에 비해 별자리가 쉽게 관측된다
있지, 너하고 같이 사는 일이 지겹다 한여름에는 걷다가 거미줄에 걸리는 일이 흔하고
우리는 너무 엉켜서 거의 한 사람처럼 보인다
어둠 속에서는 사람이라기보다 하나의 덩어리로 보인다
내일은 코인 빨래방에 들렀다가
냉장고 야채칸 속 샐러드를 꺼내 먹자
너는 온천 따위는 금세 잊고 고개를 끄덕인다
네가 과자를 집어 먹을 때마다 조금씩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린다
나는 발에 힘을 주고서
슬리퍼 밑창을 조용히 눌렀다가 뗀다
바퀴벌레 사체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얼룩 같다
자동차 후미등 불빛 너무너무
붉고 환하다
_ 고선경, <연장전>, ⟪샤워젤과 소다수⟫, 문학동네, 2023, 2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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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계속은 무엇인가요? (누군가 읽고 있기는 하겠지요?) 변화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시간이 쌓여도 변하지 않는 어떤 마음들에 엄청난 매력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계속하는 일이 늘 행복하지만은 않지요. 때때로 지겹기도 하고, 내가 잘못된 마음과 행동을 계속 이어가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하고, 더 이상 무엇이라도 이어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꾸준히 이어가는 일이 이렇게나 어렵다니. 내가 정말 사랑해 마지 않는데도.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뜨거운 사우나에 앉아 꾸역꾸역 버티는 기분.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고 올라간 계단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기분.
고선경의 <연장전>은 그 답답하고 후덥지근한 마음을 여름이라는 계절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지속과 계속이 가진 울렁거림을 말하는 시가 제게 꽤 괜찮은 위로로 다가왔습니다. 더 나은 사람과 더 나은 사랑과 더 나은 세계를 위해 무언가를 지속하는 마음과, 그 무수한 변화 앞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잡고 늘어지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사랑하는, 그 어지럽고 매스꺼운 사랑을 하는 우리에게 잘 어울리는 시 같아요. 잔잔하게 이어지는 일상성의 끔찍함, 그것을 박살내 줄 변화구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또 다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어가는 마음. 이 시가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아 좋아요. 참을 수 없는 세계에서 나를 살아가게 하는 사랑스럽고 징그러운 그것이 마냥 싫지만은 않습니다.
아직 다 소화되지 않은 감정과 마음을 가지고 글을 쓰려니 횡설수설하게 되네요. 마지막이 되더라도, 우리는 한번 더 연장전을 뛰어 볼까요? 이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계속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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