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못난 것들로부터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면
해팔이라고 합니다. 정식으로 소개하기엔 시를 비롯한 문학과 가깝지 못한 사람이라 영 부끄럽습니다마는...... 어니스트의 이름으로, 또 동경의 이유로 잠깐 기고하는 글이니 가볍게 읽어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어릴 적부터 작가와 문학인에 대한 동경을 품어온 것 같습니다. 연애는 하고 싶지만 사람은 어려운 뭇 찌질한 사람들처럼, 문학소녀라는 타이틀은 갖고 싶고 시 한 편을 품고 살기는 어려운 시절을 보냈더랬죠. 초등학교 국어 시간, 좋아하는 시를 발표하는 수업이 있었습니다. 저는 자신 있게 블로그에서 '퍼가요~♡' 했던 시를 가져왔고, 시 하단 기재된 이름도 모르는 블로그 주인의 감상문을 포함하여 발표했고, 선생님은 문해력도 떨어지고 저작권 의식도 없는 기고만장한 10살의 소녀를 호되게 혼내셨지요. 저는 그토록 시와 가까워질 수 없었습니다. 나의 언어도 독해하지 못하는 이에게 타인의 언어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으니까요. 아래에 소개할 시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못났던 시기에 우연히 찾은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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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이 나를 자주 산책시켰다
목줄 하나 없이 나는 질질 끌려다녔다
_이훤, 「타의」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
우연히 서점에 들러 눈에 띄는 시집을 한 권 골라 발견한 시였으면 더 좋았을 것을. 공교롭게도 이 시는 인터넷상에서 자주 인용되었던 시입니다. 무력감에 서점을 가볼 용기도 없던 제게 문학을 향유하는 듯한 기분을 선사해주었고요. 열등이 나를 질질 끌고 다녔다는 대목으로 '어머 맞아. 내 인생이 이리로 온 건 내 탓이 아냐. 내 열등이 나를 여기로 이끈 거야. 나는 한 마리의 작고 꼬질꼬질한 강아지에 불과했던 거야.'따위의 자기연민 가득한 내면화를 거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끄러웠던 마음에 도서관을 가봅니다.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여전히 이 시에서 어떠한 떨림을 받습니다.
목줄도 없는 강아지가 끌려다니고 있다면, 그에겐 자의라는 게 없을까?
상상해봅시다. 딴 길로 새지 않고 어떻게든 척척 걷고 있다니, 이리도 기특할 수가요. 이쯤에서 우리 강아지를 소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집 폭군. 작고 하얀 악마. 가명은 떡군이로 하겠습니다. 떡군이는 제가 가장 못난 시기에 찾아온 아이입니다. 극심한 우울증을 앓던 청소년에게 책임지고 길러야 할 생명을 선사하다니, 집안의 누구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듯합니다. 저 하나도 케어하지 못했던 저는 그렇게 떡군이를 길러냈고, 역시 남들만큼 정성을 다해 보살피지는 못했습니다. 그때의 기억 탓인지, 떡군이는 제가 가까이 오기만 해도 성내고, 물고, 한숨도 쉽니다.
떡군이는 비가 오고 먼지 부는 날이면 베란다에 나가봅니다. 투명한 유리막에 가로막혀, 필살 '산책 가지 못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나는 낮은 시야에서 보는 세상이 두려워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떡군이는 땅을 밟고 싶어 합니다. 흙바닥을 구르고 싶어 합니다. 나는 버튼만 누르면 언어를 통한 무형의 세상을 얼마든지 접할 수 있지만 떡군이에게는 먼지 묻은 바깥세상이 전부입니다. 떡군이를 기르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고구마도, 배방구도 아닌 세상을 보여주는 일이겠지요. 산책은 그토록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인제야 질질 끌려다녔다는 문장이 아닌, 첫 문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열등이, 나를, 자주, 산책시켰다.
목줄 없고 힘없는 개가 주인에게서 달아나지 않은 것이 도망칠 의지마저 없기 때문은 아니었을 겁니다. 내가 들개가 아니라면 주인이라는 타의가 있어야만 산책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고 모든 개가 불행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진절머리나는 나의 열등이 나를 꾸역꾸역 바깥으로 이끈다는 게 꼭 저주스럽고 끔찍한 일만은 아닐 겁니다.
완벽한 오독이겠지요. 시간이 흘러 이렇게도 읽힙니다. 열등이 나를 이끌어 편협한 사고를 조금은 덜도록 해주었듯, 나라는 열등생이 떡군이를 더 멀고 넓은 세계로 데려다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오독을 거쳐 가까운 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써 내리듯, 우리가 못난 것들로부터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면 정말로 좋을 텐데요.
해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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