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럽고 위험한 계절 속에서.
또 인사드립니다. 뇽입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모쪼록 큰 불행은 없으셨길 바랍니다. 저는 그동안 연극을 보고 펑펑 우는가 하면 다음 어시사의 걱정을 벌써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틈에 세상은 어느새 봄을 봄이라 부를 수 있는 날씨가 되었네요. 하늘의 채도가 높고 종종 따뜻해진 틈을 타 날벌레들이 늘었습니다. 이번 주의 최고기온이 16도라는 예보를 보고 봄은 봄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봄을 온전히 즐길 수 없는 사람들도 떠올립니다. 봄은 사랑스럽지만 너무나도 위험한 계절이 아닐까 싶어집니다. 모든 것이 활기를 띠는데 홀로 잿뱇 세상을 사는 것 같아지면 겉잡지 못한 생각이 잠시나마 행복했던 기분을 망치는가 하면, 벚꽃 아래를 걸으며 여유를 만끽하는 연인들을 보자니 문득 외로움이 심해지기도 합니다. 행복해지는 것도 우울해지는 것도 너무 빠른 이 계절 속에서 저는, 버팀목이 되어줄 시를 하나 찾은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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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좋아해?
걷는 걸 좋아해?
맛있는 걸 좋아해?
네가 사는 것도 좋아하면 좋겠다
너를 기다리는 카페에서 옆자리 사람들의 대화를 듣는다 아이들 점수, 아이들 담임, 아이들 친구, 아이들 운동장, 아이들 급식……
학부모 회의 마치고 온 두 사람은 세 시간 넘게 아이들 이야기에 몰입한다 한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멜빵바지를 입었어 둘 다 4학년 2반이며 한 아이는 수학을 잘하는 여자아이, 한 아이는 강아지를 좋아하는 키가 작은 남자아이인 걸 나도 알게 되었어
사랑하는 대상을 가장 많이 생각하고 가장 많이 말하는 거라면
나는 너를 다섯 번 생각했다
사는 게 뭘까?
연말 퇴근길에 너는 말했지
다른 부서 과장의 부친상에 조의금 부쳤고 야근을 했고 배고파 죽겠다고
회사 가는 게 괴롭다고 했어
사는 게 뭔지 달아나고 싶다고
안녕 벗으면 딴 사람 같은 너는 김연아와 에디 레드메인과 인천 사는 친구를 좋아하지 얇은 티셔츠에 청바지 입길 좋아하고 초코우유와 망원한강공원을 좋아하지 빨래하고 누워서 웹툰 보길 좋아하지
일과 중에 나는 너를 기다리는 이 시간이 제일 좋아
널 만날 약속 없었다면 온종일 끔찍했겠지
나도 너처럼 습관적으로 한숨 쉬지만
네가 얼굴 뾰루지랑 새치를 걱정하면서도
솟아오르는 웃음을 터트리면 좋겠어
어쩌면 삶에 의미가 있을지도 몰라
사는 걸 꽤 좋아하면 좋겠어
_김이듬, 「후배에게」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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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부조리함에 지쳐 괴로워하고 ‘사는 게 뭘까?’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후배에게 화자는 말합니다.
네가 사는 것도 좋아하면 좋겠다, 사는 걸 꽤 좋아하면 좋겠어.
주저없이 건네는 다정함은 지금의 세상에서 찾아보기 꽤 힘든 것이라 홀린 듯 시를 옮겨 적었습니다. ‘나 힘들어’ 한 마디에 돌아오는 비난은 수십 수백이고 공감과 위로는 눈을 씻어도 찾아보기 힘든 세상에서, 가감 없이 당신이 사는 것을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지지를 보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나하나 기억했다가 나열할 수 있는 사람은, 하루에 다섯 번이나 다른 사람을 떠올리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독자분들께도 이 시가 다정하게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오래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강렬하지는 않더라도 힘들 때 슬쩍 꺼내 볼 수 있는 그런 시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 독자분들께 제 글이 저 시와 같은 글이 되기를 감히 바라봅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벌써 지쳐버린 하루의 시작 속에 잠시나마 포근하게 감싸주는 것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께서도 사는 걸 꽤 좋아하게 되셨으면 해요.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봄, 조금만 슬프고 잔뜩 좋아하고 행복할 수 있는 나날들이 되길 바랍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그때까지 부디 즐겁게 지내고 계시길 바라며,
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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