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아마도 열심히...
안녕하세요. 죽지도 않고 돌아온 냥입니다.
저번 글 이후로 꽤나 바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다들 열심히 사셨나요.
전 딱히...
그렇지만 단호하게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 일찍 일어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침부터 밖에 나가려니 매일 아침이 눈꺼풀과의 전쟁입니다. 정말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전승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여곡절이야 많았지만 그럼에도 일주일을 꿋꿋이 살아냈다는 점에 저에게 손가락 박수 정도는 쳐주고 싶습니다. 독자님들은 어떤 답변을 하셨을진 모르겠지만 아마 어떤 방식이든 일주일을 잘 살아내셨기에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겠죠. 방금 집에서 제가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렸으니 잘 들리셨길 바랍니다. 솔직히 열심히 까진 살았는지 모르겠는 저와 몇몇 독자님들을 위해 오늘도 시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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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서에서 오수까지 어른 군내버스비는
400원입니다
운전사가 모르겠지, 하고
백원짜리 동전 세 개하고
십원짜리 동전 일곱 개만 회수권함에다 차르륵
슬쩍, 넣은 쭈그렁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걸 알고 귀때기 새파랗게 젊은 운전사가
있는 욕 없는 욕 다 모아
할머니를 향해 쏟아붓기 시작합니다
무슨 큰일 난 것 같습니다
30원 때문에
미리 타고 있는 손님들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운전사의 훈계 준엄합니다 그러면,
전에는 370원이었다고
할머니의 응수도 만만찮습니다
그건 육이오 때 요금이야 할망구야, 하면
육이오 때 나기나 했냐, 소리치고
오수에 도착할 때까지
훈계하면, 응수하고
훈계하면, 응수하고
됐습니다
오수까지 다 왔으니
운전사도, 할머니도, 나도, 다 왔으니
모두 열심히 살았으니!
_안도현, 「열심히 산다는 것」(『그리운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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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우리는 지나치게 화를 냅니다. 지나치게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내’요. 사실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닌데 말이죠. 또 어떤 상황에서는 불필요하게 구질구질하고 구차해지기도 합니다. 모두가 그런 포인트들이 있기 마련이죠. 각자의 결핍들이 모이고 모여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보이는 것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순 없습니다. 근데 어쩌겠습니까, 알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사람 마음인걸요.
저도 가끔은 제 감성이 이성을 압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30분 이내에 과거의 저를 부끄러워합니다. 쥐구멍에 숨고 싶어요. 누구에게 말을 하기라도 했으면 정말 큰 일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그냥 말을 아끼기로 했습니다. 누가 마음에 안 들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 사람도 나름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거니까요. 감히 남의 삶에 뭐라 할 자격이 나에게 있나 싶습니다.
이번 주도 열심히 사셨느냐고 세 문단 앞에서 질문해놓고선 몇 줄 글을 쓰다 보니 무책임하게도 그 질문이 무의미해 보입니다. 버스비를 30원 빼돌린 할머니나 지치지도 않고 늙은 할머니를 훈계하는 운전사나 그걸 지켜보는 나나 모두 열심히 살았다니까요. 아마 우리가 보는 모든 단편적인 사건들은 모두 각자의 삶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방식의 집합체인가 봅니다. 마침내 30원이라도 아끼고 싶었던 할머니와 30원을 손해 볼 뻔한 운전사와 산서에서 오수까지 그 소음을 견뎌낸 나 모두 열심히 살았다는 작가의 말에 납득이 갑니다. 우리는요, 다 열심히 살고 있어요. 그리고 과정에서의 잡음엔 신경을 조금 덜 필요도 느낍니다. 여러분도, 저도, 인생이라는 그래프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
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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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그래도 왠지 이번 주는 조금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몰려와 피곤해져 버렸습니다.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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