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조각합시다
안녕하세요, 말지입니다.
두 번째 글입니다. 사실은 세 번째예요. 시집 몇 권을 뒤적이다 겨우 찾은 시에 감동하였는데 ‘지혜를 사랑하다니’라는 대목에서 지혜(sophy)를 사랑(phil-)한 사람이 철학자 니체임을 바로 알아채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 다시 백지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저는 뻔뻔한 사람으로 살아왔는데 시 앞에서는 작은 활자 속 점으로 수렴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 점이 활자를 이루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니겠냐며 다시 시집의 눈치를 봅니다.
오늘은 수요일입니다. ‘마감일은 월요일 아니었나요?’ 어시사 에디터인 저만의 특권이라고 뻔뻔하게 말해봅니다. 우시사 필진으로서의 박정민 배우의 마지막 우시사를 읽고 슬며시 박준 시인의 시집을 집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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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는
자정이 지나서야
좁은 마당을
별들에게 비켜주었다
새벽의 하늘에는
다음 계절의
별들이 지나간다
별 밝은 날
너에게 건네던 말보다
별이 지는 날
나에게 빌어야 하는 말들이
더 오래 빛난다
_박준, 「지금은 우리가」(『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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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늘이 파랗다’, ‘구름이 몽글몽글 너무 예뻐’, ‘지금이야 빨리 나가서 노을 좀 봐’따위의 말을 건네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늘, 구름, 노을, 별, 달은 언제나 있지만 내 안엔 가끔씩 있는 것들이어서 너와 나의 타이밍이 맞는 지금 온전히 누려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가 좋아하는 ‘모든 것의 신’인 아는 형님이 빗소리에 콧노래로 넣던 화음이 떠오릅니다. 비가 오는 날이 좋다며 부르던 노래의 흥겨움이 축 처진 제 척추를 세웁니다. 누군가는 자전거를 탈 수 없겠지만 누군가는 콧노래 속 음표들로 페달을 밟고 있는 날이니까요.
저는 별이 좋은데 지는 별은 싫어요. 가만히 바라볼 땐 잘도 눈을 맞춰주었으면서 걸음을 옮겨 고개를 든 날에는 나를 외면해요. 많은 별이 밝던 날엔 양평에서 돗자리를 펴고 가만히 누워있던 우리가, 꽁꽁 얼어 추워 보이는 차를 걱정하던 우리가, 밤하늘을 보다가 장작이 꺼져버릴까 걱정하던 우리가, 별을 보다 급히 차를 피하던 다 다른 날의 우리가 건네던 말들이 떠오릅니다.
술 취한 친구가 전화 너머로 40분 간 해준 별을 사랑하게 된 이야기, 계절마다의 별자리 이야기는 단순한 주사는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별이 지는 날엔 철저히 혼자였습니다. 지는 별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어요.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하루에 몇 번이나 일주일에 며칠이나 보는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보고 있는 저 인공위성도 나한텐 별인 걸. 별이 지는 날, 별이 이미 저문 날 너에게 건넬 말이 없었던 건 내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인가 봅니다. 별이 지는 날엔 마음을 새기고 마음이 지는 날엔 별을 새겨야겠어요. 더 오래 빛나도록.
그를 기다리며 글을 쓴다던 우리의 시차가 맞던 아침을 기억합니다. 네덜란드 소녀라 불리며 잠 못 들던 새벽의 괴로움이 초시계가 되어 7시 30분에 찾아오는 다정함을 기다리던 나를 기억합니다.
우린 오늘 더 철저히 함께해요. 서로를 조각합시다.
다음 계절의 별이 지나는 동안에는 나를 조각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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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어느덧 옷깃을 여미는 척 가슴을 오므려 슬픔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봄*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봄에 대한 글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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