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는 도망갈 수 없겠다는 마음
안녕하세요. 정만입니다.
시의 시옷 자도 모르는 제가 박정민씨 때문에 시를 읽게 되더니 이제는 글까지 쓰고 있는 것이 조금은 어색하기도 합니다.
어제 온종일 내가 왜 어시사를 한다고 했는지 제 자신을 원망하면서 머리를 싸매고 시를 찾다가 회피형 만렙인간인 제 마음에 콕 박히는 시를 발견하여 여러분께 소개시켜 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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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수리하려고
녹색 가방 안에서
십자드라이버를 꺼내 들자
지구본이 박살 났다
천국은 지구 밖에 있겠지
지구만 박살 내면
누구나 천국에 갈 수 있을 거야
아니
하늘도 다 박살 내는 거야
그럼
하늘에선 누가 기도를 들을까
뒤집어진 바다에선 누가 기도를 들어줄까
하늘 밖에선 새 떼가 날아가고 날아가고
물에 불은 얼굴들
십자드라이버를 들고
박살이 난 지구본을
수리하러 돌아오고 있는 일요일
이설야_지구위의 지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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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항상 무슨 일이든지 잘 풀리지 않으면 세상을 탓했습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이런 지구 탓이라고 습관처럼 말하며 모든 상황에서 회피를 선택했습니다. 한국 공부와 맞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며 도망쳐 외국까지 나오기도 하며 내 세상에서 도망쳐 다른 곳으로 가면 더 나은 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박살 내고 회피해 다른 세상에 들어가 봐도 그곳에 제자리는 없습니다. 지구만 박살 내면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박살낸 지구 밖에는 또 다른 지구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분명 더 나아지기 위해서 한 선택들이었는데 이제 제게 남은 것은 부서진 지구의 잔해들뿐입니다.
요즘에는 그냥 지금 내 위치에 순응하며 제 자리를 찾아가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부수다가 나중에 결국 하늘까지 박살을 내더라도 그것도 그것대로 문제일 것 같아서 그냥 망가진 지구를 수리하며 살아볼까 합니다. 회피할 수 없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연스럽게 돌아오는 일요일처럼 일요일이 지나 월요일이 와도 화요일이 와도 이제는 상황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받아들이고 남아있어 보려고 합니다.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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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시에 관한 글을 써보아서 제가 이 시를 감히 이렇게 받아들여도 되는 건지 내가 맞게 읽은 건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시를 읽고 드는 생각들을 최대한 솔직하게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무거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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