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뇽입니다. 겨울은 잘 보내셨나요. 여러분께서 이 편지를 읽고 계시다면 저는 기어코 마무리를 해낸 것이겠지요…. 형편없는 실력으로나마.
따듯할 것 같은 햇살에 속아 얇은 겉옷을 입고 나온 날, 오랜만에 서점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목적이 너무나도 뚜렷한 탓에 고민이라곤 하나도 없는 걸음걸이로 도착한 서점은 참으로 익숙한 향으로 저를 맞이합니다. 망설임 없이 시집이 늘어선 책장 앞에 섰습니다. 어느 시집을 집든 인연만 닿으면 쓸 수 있다는 오만을 가지고서 손에 든 시집들은 전부 도로 제자리를 찾아 돌아갔고, 그렇게 세 권의 허탕을 친 뒤에는 손으로 허공을 휘젓기만 했습니다. 그제야 깨닫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시는 아름답죠, 소설 자주 읽어요.
자신있게 말했으나 난 너무나도 오래 시와 함께하지 않았다는 것을.
휴대폰 속 ‘있어 보이는’ 문장들은 전부 산문집의 일부임을 그제서야 알아냅니다. 마지막으로 읽은 시는 수능 지문에 있는 먼 옛날의 것이 끝이었습니다.
부끄러움이 손에 무게추를 더하는 기분이 듭니다.
평소에 좀 읽을 걸 하는 후회조차 늦은 지금, 저는 이 편지를 쓸 자격이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때려칠까 싶은 마음을 떨리는 손끝에 담아 집은 그 날의 마지막 시집 속에는 아주 고맙게도, 심장을 파고드는 시가 잠들어 있었습니다. 사랑이라는 흔하고도 어려운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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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데아는 오직
사랑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변하는 건
사랑이 아니야
사람이지
사랑을 했던 그
사람의 마음이지
_이창훈, <플라토닉 러브>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
―
이 시를 한참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사랑의 이데아. 사랑의 원인이자 본질은 오직 사랑. 변하는 것은 과연 사람일까요 사랑일까요?
이 시가 던진 질문은 마치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묻는 것처럼 다가와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시는 본다고 정답을 알려주는 류의 것은 아니기에 시집을 덮었습니다. 집으로 걸어온 기억은 없는데 정신을 차리니 모니터를 켜두고 시를 늘어두고 있었어요.
변하는 것은 사랑일까요 사람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일까요?
제가 사랑했던 것들을 떠올려 봅니다. 사랑‘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합니다. 또 사랑의 사전적 정의까지 생각이 미치면‘역시 변하는 건 사람이 아닌가?’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게 됩니다. 문법적으로 따지자면 사랑은 보통명사이지만 사랑은 또한 고유명사가 아니던가요. 입으로 내뱉기 전까지 사랑은 많은 것을 포괄하지만 사랑의 방향이 생기고 온전한 대상이 정해지는 순간 고유명사가 되어버리곤 하지 않덥니까.
이 편지의 마무리에 다다른 지금도 답을 내리진 못했습니다. 마치 현대소설과 같은 시를 첫 편지부터 고르게 되다니 저 자신도 참… 답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본질은 오직 사랑이라는 문장을 이해하기에는 식견이 부족한 탓이 큽니다. 이럴 거면 플라톤은 왜 배웠는지.
곧 봄이 다가옵니다. 사랑의 대명사와 같은 계절이 코앞인데 이 사람은 사랑의 정의로 돌아가 이게 고유명사인지 보통명사인지 상태인지 활동인지 본질적인 의문 속에서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여러분의 사랑은 그 정의가 명확하십니까.
만약 독자분들께서도 이 비문과 의문으로 가득한 시를 읽고 사랑이란 대체 뭐길래 이렇게까지, 하며 고민하게 되셨다면 저 시집을 펼쳐 보시기를. 통쾌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면 함께 고민하는 봄이 되겠습니다. 물음표만 던져놓고 가는 이가 되진 않겠습니다.
길고 난잡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쪼록 평온한 날들 보내시길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뇽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