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엔 무엇이 흐르지?
안녕하세요. 말지입니다.
주말엔 특별한 카페와 책방에 다녀왔습니다. 상기된 마음을 가라앉힐 여유도 없이 재빨리 바뀌어버린 밤낮에 다시 제 일상으로 돌아왔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새벽 6시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네요. 평소라면 쓸모 없는 것을 할 수 있어 쓸모 있는 이 새벽 시간을 시로 채우고 있다는 것이 더욱 특별합니다.
어제 저녁, 제가 좋아하는 야구팀에서 팀의 마수걸이 홈런이 나왔습니다. ‘마수걸이’란 ‘맨 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일’ 혹은 ‘맨 처음으로 부딪는 일’인데요, 보통 ‘맨 처음’이라는 의미로 야구에서는 팀의 시즌 첫 홈런, 개인의 시즌 첫 홈런 등에 ‘마수걸이’를 붙입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쓰임입니다.
이젠 연초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4월을 앞둔, 어엿한 3월 27일입니다. 저는 마수걸이 독서를 우시사와 어시사를 빌미로 이루었습니다. 사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걱정과 무기력함으로 채워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룬 것이 있었네요. 마수걸이 홈런을 보고 이 시기가 ‘처음’이라는 말과 아주 어색하기만 한 시기는 아니라는 위안을 얻었습니다. 여러분의 어떤 분야에서 마수걸이가 있으셨나요?
그게 무엇이든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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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구름을 집으로 데려오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걸까 사람들은 조금쯤 회의주의자일 수도 있겠구나 설령 빙하를 가르는 범선이 난파를 발명했다고 해도 깨진 이마로 얼음을 부술 거야 쇄빙선에 올라 항로를 개척할 거야 열차가 달리는 이유를 탈선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사람들은 궤도를 이탈한 별들에게 눈길을 주는 걸 몹시 염려해 평범한 게 좋은 거라고 주술을 멈추지 않지 누군가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기를 띄운 오만함이 추락을 발명했다고 말한다면 그럴 수도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든 이동은 늘 매혹적인 걸 나로부터 멀어져 극점에 다다르는 것으로 나를 발명해야 할까 흐르는 구름을 초대하고 싶은 열망으로
_이은규, 「나를 발명해야 할까」(『다정한 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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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을 집으로 데려오지 못한다고 믿는 사람들을 보며 조금쯤 회의주의자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궤도를 이탈한 별을 염려의 눈길로 바라보고 평범함을 바라며 주술을 외는 사람들을 ‘그럴 수도 있겠다’며 이해하려 합니다. 동시에 모든 이동은 매혹적이므로 ‘나를 발명해야 할까’ 생각합니다.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글입니다. 분명한 이해를 재촉하는 글이 아니라서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시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생각의 방식이 나와는 다르지만 닮고 싶은 것이어서요.
생각의 역동성을 좋아합니다. 끝없이 흐르는 물길 위로 흐르는 배가 생각의 짐으로 가라앉아 심해를 항해하는 움직임이 보입니다. 쉽게 깨져버린 두꺼운 유리 파편을 주워담으며 노래하고 싶습니다. 노트북을 충전하는 미세한 전류의 파동으로 흔들리는 물병에 든 물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내 안엔 무엇이 흐르지?
올 봄 저의 고답적 목표는 제 생각과 언어를 입체적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쓸 만한 인간』의 저자이자 ‘우리는 시를 사랑해’ 필진으로 참여한 어떤 작가의 글을 좋아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방식과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배치하는 센스를 늘 질투합니다. 같은 마음으로 이 시를 질투합니다.
삶은 의미를 찾는 과정이 아닌 의미를 찾아 채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쓸모에서 쓸모를 찾듯 익숙함 속 새로움을 찾을 겁니다. 나만의 언어로 채울 겁니다. 나를 발명해야지
말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