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없지만, 사랑이란 걸 알기에
안녕하세요, 유르입니다.
여러분들은 가을을 잘 보내고 계신가요? 가을이라기엔 너무 더운 요즘 날씨때문인지, '이별의 계절'이라는 가을의 의미도 변한 듯하네요. 낙엽이 떨어지는 이 계절, 저는 짝사랑에 빠졌습니다. 상대가 누구일지 궁금해하실까 봐 여러분들께만 살짝 말해드리자면, 제 짝사랑 상대는 학교 선배나 동네 친구가 아니라, 바로 "영화"입니다. 오작교라 한다면 요즘 더욱 잘생겨진 성이 박인 어느 배우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갑자기 영화에 빠졌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고2 2학기 기말이 다가오는 지금, 제가 평생 준비해온 문창과 대신 영화과로 마음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계기는 그리 멋진 게 아니었습니다. 중간고사 성적이 개똥같았고, 입시 학원 선생님께서 성적에 조금 더 맞는'영화과 수업을 들어보라'는 추천을 하셨죠. 별 생각없이 박정민이란 배우를 생각하며 영화과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첫날부터 그동안 제가 뭘 원했는지 깨닫는 순간이 왔습니다. 그날 이후로 밤새 영화과 관련 유튜브를 찾아보고 단편과 장편 할 것 없이 수십 편의 영화를 봤고, 뜬눈으로 수업에 가서도 헤헤거리기만 했습니다. 사랑이란 이런 건가 싶더군요. 거리를 걸을 때면 내 시야 속 세상이 영화 속 프레임처럼 보이고, 누군가의 말도 대사처럼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서는 미쳤다고 하더군요. "문창과에 이어 영화과라니, 왜 자꾸 돈 안 되는 길로 가냐"며 걱정이 많습니다. 다행히 부모님은 제가 문창과를 준비하던 때부터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라'며 지켜봐 주셨어요. 하지만 주변의 반응이 썩 좋지 않다 보니, 저의 사랑이 죄짓는 기분이 들라고요. 저는 헛된 꿈을 꾸고 있는 건가봅니다. 그럼에도, 그 끝이 쓸 것을 알면서도 들이키는 저는 뭘까요? 답이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에 쌓일 때마다, 시집을 꺼내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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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 아니야 조금
많이가 아니야 조금
네 앞에서 잠시
앉아있고 싶어
나는 왜 내가 이렇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금방 보고 헤어졌는데도
보고 싶은 네 얼굴
금방 듣고 돌아섰는데도
듣고 싶은 네 목소리
어둔 하늘 혼자서 반짝이는 나는 별
외론 산길에 혼자서 가는 나는 바람
웃는 네 얼굴 조금만 보고
예쁜 목소리 조금만 듣고
이내 나는 떠나갈거야
그렇게 해줘 부탁이야
나는 왜 내가 이렇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나태주 ⸢부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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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찾기 위해 펼친 시집이었지만, 답 대신 위로를 얻은 것 같습니다. 시가 왜 좋은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어요. 시는 교과서처럼 모든 것에 답을 주려고 하지 않고,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남겨두죠. 이 시를 읽고 나니 화자는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 글을 읽은 저는 제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된 듯합니다. 그냥 사랑인가 봅니다.
시에 제 상황을 자꾸 끼워 맞추고 있는 걸 보면, 아마추어스럽게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그저 귀엽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예전의 저는 무의미하게 살았습니다. 한 인물이나 한 경험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죠. 예민한 성격 탓인지 늘 정신병을 줄줄이 소세지마냥 달고 다니던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가 소개한 시의 화자처럼 모르겠다는 말만을 반복하곤 했습니다. 근데 참 이상하게도, 박정민이라는 배우를 좋아하게 된 뒤로 시도 읽기 시작하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목표도 생겼고... 살고 싶다는 의지도 다시 찾았습니다.
어릴 적 독기 넘치던 시절로 돌아간 듯합니다. 그저 고마운 마음에, 이곳에 괜스레 주접을 떨고 싶었어요.
이 마음이 잠시일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이 소중하기에 다시 열심히 살아보려 합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물론 사랑한다는 말은 너무 당연해서 생략합니다.
감사합니다.
유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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