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w입니다.
날이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아직은 가을이라 부르고 싶지만, 곧 겨울이 될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저는 이번 가을이 유독 느낄 새도 없이 빠르게 지나간 듯합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했고, 바쁜 일정을 반복하다 보니 금세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래서 많은 것들에 소홀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당장 앞에 놓인 일들이 너무 많고 버거워서, 다른 것들은 깊이 생각할 시간도 없이 그저 흘려보낸 날이 많았습니다. 시간과 마음이 쌓여가는 것이 줄 수 있는 기쁨을 알기에 이번 가을은 조금 아쉽습니다. 남은 날들에는 조금 더 충실할 수 있을까요? 모를 일이지만 그러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이 시를 가져온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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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지 않는 일에도 운율은 있다
색깔을 구분할 수 없는 병에 걸린다면
노란색을 아무 색으로도 알지 못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색이 파란색임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아픔에도 아름다움은 있다
그리하여 그렇게 눈을 감아도
당신이 내 눈 속에 살지 못한다면
당신이 돌아다니지 못한다면
어느 낯선 골목 안쪽 햇빛 아래에
쌓인 눈이 녹고 있다면
그런데도 많은 부분이 더 녹아야 한다면
눈의 주인이 애타게 눈을 기다리던 당신이라면
삶의 구석구석까지를 돌보는 일도 고단할 터인데
당신이 눈까지 만들어야 한다면
눈을 편애하는 당신에게도 수고와 미안은 있다
구불구불한 길이 좋은 당신
감정과 열정이 희미해진 당신
너무 바싹 말라 있거나 독이 올라 있는 몸 상태를 돌보느라
당신 사정이 더 참담해진다면
당신이 누웠던 자리를 정리하다가 비늘을 보았다
잔잔히 당신이 떠날 수 있다는 가정에도 운율은 있다
_이병률, 「어떤 나이에 대한 걱정」,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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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되도록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하는 사람입니다. 자주 뒤를 돌아보는 성격이라 그렇습니다. 되짚어 보면 부끄러운 일이 태반이라고 생각해, 무언가를 남기는 일을 최대한 피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마저 되짚어 보자면요. 남기지 않는다고 해서 돌아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적게 남긴 무언가들을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되고, 결국 후회하게 되는 건 똑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아직 답을 찾진 못했습니다만, 이 시를 비롯한 저를 둘러싼 것들이 제게 작은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이 시는 제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의미로 읽힙니다. 원하지 않는 일에도 운율은 있고, 아픔에도 아름다움은 있고, 눈을 편애하는 당신에게도 수고와 미안은 있다고 말하는 시인은, 제 마음을 꿰뚫어보는 것만 같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남기기를 원하지 않아도 어딘가에는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 하나씩은 꼭 남기고 있을 테고, 시간을 흘려보내게 만들었던 바쁜 일정 속에서 받았던 스트레스 사이사이에도 기쁜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긴 고민을 하면서도 결국 저는 새로운 것들을 시작하고 좋아하는 일과 사람과 마음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유지하고도 있고요. 그러니 생각에 빠지는 일도, 생각을 미뤄두고 잠시 도망가는 것도, 혹은 그냥 해버리는 것도 다 정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언제나 맞는 뾰족한 수라는 것이 없으니 그때마다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게 제가 찾은 방법입니다. 단, 후회는 줄여야겠지요. 그러려면 내 모든 걸 다해 집중하고 노력할 수 있는 정신과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 마음을 다지는 데 이 시와 저를 둘러싼 비늘과 곧 내릴 눈이 도움이 되어줄 거라 믿습니다.
호흡이 긴 글보다는 마침표가 잦은 글을 좋아합니다. 문단의 나눔이 적당하고 싶었는데 쉽지가 않네요. 시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글이라기보다 근래의 제 삶을 회고한 것에 가까운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은 아직도 저어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만, 요즘의 저는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새로이 시작한 일들에서 배운 것은 역시 하지 않는 것보다는 부족하더라도 해보는 게 낫다는 점인지라, 오늘의 이 글로써 제 삶의 한켠을 남겨보려 합니다.
시작을 했으니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겠지요? 여러분이, 제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 수 있다는 가정에도 운율은 있듯이 말입니다. 전보다 시를 사랑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이만 줄여보겠습니다. 다시 만날 날까지 춥지만은 않은 겨울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안녕!
w 드림.